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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김종덕 “예술은 과학이다”
  • 오치우
  • 등록 2019-11-12 04:44:16
  • 수정 2019-11-16 2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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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 죽음보다 완벽하고 삶보다 치열한 교감을 주는 절대적인 존재




그는 세 번이나 자살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춤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데 성공했다. 옛날에 대학에서 국문과를 다니며 시를 쓰다가 학업을 포기하고 몸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새파랗게 젊은 날, 세 번의 자살 기도는 참으로 독하게 쓴 ‘시’라고 볼 수 있지요.”

 

첫 번째 시도는 줄을 맨 기둥과 천장이 무너져내려 실패하고, 두 번째는 가스를 틀어놓고 잤는데 가스가 새나가는 바람에 실패했다. 세 번째는 수면제, 그러나 그 독한 가스도 수면제도 그의 인생보다 싱거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대학교수다. 서울시립무용단원, 한국예술종합학교·한양대학교·서울문화예술대학교 겸임교수 수원대학교 객원교수, 천안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을 거쳐 지금은 세종대학교 창의소프트학부 뉴미디어퍼포먼스 전공 초빙교수이고 전국무용제 예술감독, KBOX TV 예술감독이다.

 

6남 2녀의 막내로 자라며 옷과 학용품을 두 단계에 거쳐 물려받으며 겨우 국문학 공부를 했지만 졸업장까지 물려받진 못했다. 학업 중단 후, 그는 모진 방황과 자살 기도 후에 ‘나 아닌 삶을 살고 싶어’ 연극 속으로 익사하듯 빠져들었다. 그리고 깊은 바다 같은 연극무대 위에서 마약 같은 위로를 만난다.

 

“춤! 그건 죽음보다 완벽하고 삶보다 치열한 교감을 주는 절대적인 존재였다.”고 그는 말했다. “다른 별로 통하는 비상구가 거기 열려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요. 그날부터 내게 춤은 삶의 이유가 됐어요.”

 


김종덕 교수의 작품 100년의 꿈.

목숨을 건다는 건 모두 다 거는 게 아니다. 깡패들이나 도박꾼들은 모두 다 걸었다. ‘올인’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짜 목숨을 건다는 딱 하나 ‘살아있음’ 자체를 거는 거다. 

 

그리고 그는 살아남았다. 춤을 추면서 대학을 다녔고 춤 때문에 부산시립무용단원이 됐고, 부산대 무용학과 석사, 그리고 서울시립무용단원이 됐다. 


내친김에 시작한 박사는 춤으로만 되는 게 아니었다. 춤 박사라니. 그러나 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춤보다 침이 필요했다. 송곳보다 더 예리하고 푹 꽂으면 벌떡 일어나는 ‘신침’같은 능력이 필요했다. 




김종덕 교수가 직접 안무한 작품 'puppet'. 신비로운 분위기의 LED의상으로 독특한 무대 의상 연출을 했다. 

그때, 그에게 그야말로 ‘신침’처럼 예리한 문학적 감성이 소름처럼 돋아올라 깃발처럼 나부끼게 되고 젊은 날 완성하지 못했던, 부러진 칼날처럼 날카롭기만 한 그의 시어들이 몸을 관통하고 나와 눈물 같은 ‘춤’으로 흘러내렸다. 

 


그의 박사학위는 장작 같은 가난 위에 누워서 숨을 거둔 아버지의 출상 날 무대 위에서 춤을 추어야 했던 김종덕이 아버지에게 헌정한 훈장이다. 

 

출상 날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던 그가 그날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 ‘꼭두의 눈물’은 “아버지에게 바치는 천도재였어요. 그 무대 위에서 하늘로 아주 떠나시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지요. 아버지가 임종하실 때까지 내가 춤꾼이 된 걸 모르셨거든요. ‘꼭두의 눈물’을 보신 아버지의 영혼이 용서하고 떠나셨을까요?”


 아버지 출상 날 무대에 오를  수 밖에 없던 그날을 생각하면 만든 작품. 꼭두의 눈물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허공을 보는 그의 각진 턱선이 아름답게 슬프다. 반듯한 플라타너스처럼 곧게 편 어깨로 세상을 받치고 사는 그를 보고 왜 ‘시지프스의신화’가 떠오르는 걸까?

 

그는 깊은 계곡 끝에서부터 바위를 굴려 올리듯 그렇게 무대 위로 작품을 끌어 올렸다. ‘아빠의 청춘’, ‘꼭두의 눈물’,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통해 생전에 춤꾼이라고 밝히지 못한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회한을 풀기 위해 속죄하듯 춤을 추었다.

 

그 후, ‘아우라지는 두 갈래로 흐른다’, ‘그리움의 가속도’, ‘천고의 노래’, ‘광야’ 등은 분단에 대한 아픔과 동질성 회복에 대한 염원과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추어 혁명하듯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묵직한 주목을 받게 된다.


 

김종덕 교수의 작품. 아우라지는 두 갈래로 흐른다. 

세상이 그를 주목하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김종덕의 춤은 몸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말하는 시어를 전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듯하지만 사실은 그의 춤사위가 속삭이듯 소리가 되고 그 소리가 강물처럼 일렁여 사람들의 몸을, 마음을, 흔들어 별빛 가득한 벌판으로 데리고 간다.

 

그는 춤이라는 비상구를 통해 우리에게 ‘은밀한 유체이탈’을 유도한다.

 

그는 늘 ‘매우 위험한 감성술사’로 우리 앞에 선다. 춤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남자! 그러나 그는 춤으로만 끝낼 기세가 아니다. 춤에서 시로, 시에서 소리로, 소리를 다시 패션으로.

 


그 패션은 지금 4차 산업의 새로운 콘셉트로 주목받고 있다. 이 모든 메시지들이 말이 아니라 그가 연출하거나 실연하는 무대 위에 등장하고, 작동해서 “춤꾼 김종덕”의 작품이 됐다. 그의 무대는 때로 감각적인 패션쇼가 되는가 하면, 오페라, 뮤지컬 공연장이 되기도 하고, 때때로 미래세상을 구현하는 IT 퍼포먼스가 되기도 한다.


 


그의 무대는 한마디로 “오늘이 미래다!”를 웅변하고 있다.

 

“예술은 미래를 말해야 합니다. 50년 전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을 딛었지만 예술가들의 의식은 아주 오래전에 달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 의지가 엔지니어들의 등을 두드려 최근에서야 달에 도착시켰을 뿐이지요. 달에 쏘아 올린 로켓은 아주 오래전의 벽화 속에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예술은 미래를 말하는 언어다!’라고 단언하는 그가 내민 명함에는 ‘세종대학교 창의소프트학부 뉴미디어퍼포먼스 전공 초빙교수’라고 쓰여 있다. 이렇게 긴 이름만큼 그의 꿈이 미래를 향해 길고 곧게 펼쳐져 있음을 세상 사람들이 이제야 눈치채기 시작했다.

 

교수이자 예술가로 살아온 김종덕은 시인이기도 하고 칼럼니스트이고 교수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단호하다. “김종덕은 춤꾼입니다. 자신을 ‘미래를 구현하는 예술가’로 단정하는 ‘춤꾼’ 김종덕에게 예술에 대한 정의를 묻자. 과학자 같은 표정으로 잘라 말했다.

 

“예술은 오래된 과학!” 과연!

 

헌데, 달 보고 쓴 이태백의 시는 달로 간 ‘아폴로’의 속도를 얼마나 더 빠르게 했을까? 어쨌든, 그건 맞다. “예술은 언젠가 과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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